한혜숙은 젊은 시절 엄청난 미모의 소유자로 아직도 그녀의 리즈 시절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하는데요. 최근 그녀의 활동이 뜸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배우 한혜숙에 대해서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한혜숙 프로필

한혜숙 나이는 1951년 8월 20일생입니다. 한혜숙 고향은 경남 부산시이며, 학력은 덕성여자고등학교입니다. 한혜숙 데뷔는 1970년 MBC 2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를 했으며, 2009년 이후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한혜숙은 1970년대 안방극장의 트로이카 중의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한혜숙 리즈 시절

한혜숙은 원래 MBC 탤런트로 데뷔했으나, 1971년 KBS 주연급 탤런트 모집에 당선되어 하명중과 공동주연한 드라마 '꿈나무'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75년에 방영된 꽃피는 팔도강산으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하게되지요. 이후 TBC에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로 대표되는 2세대 트로이카가, MBC에 양정화, 이후 김자옥, 김영애, 이효춘, 김영란이 있었다면 KBS에는 한혜숙이 있다할 정도로 KBS 대표 탤런트로 활동하였으며, 1979년

 KBS 대하 드라마 '토지'에서 제1대 최서희 역할로 출연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혜숙의 미모는 상당했는데요. 짙은 쌍커풀 그리고 또렷한 이목구비 등 그녀의 외모는 상당히 이국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혜숙의 외모가 가장 먼저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고, 연기력 역시 준수한 편이라서 큰 사랑을 받게 되지요.


한혜숙은 1986년 ~ 1987년 KBS 대하 드라마 '노다지'에서 최실단과 최성희 역할을 맡아 열연을 하며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혜숙 전설의 고향

한혜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전설의 고향이 있는데요. 전설의 고향에서 방영했던 구미호에서의 구미호 역할이 있습니다. 전설의 고향 제 1호 구미호였는데 당시의 흑백화면과 함께 약간 독한 인상을 보여주는 한혜숙의 표정 연기가 어우려져 내 다리 내놔와 함께 충격을 주었습니다. 당시 전설의 고향 애청자들 중에는 전설의 고향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으로 한혜숙이 구미호로 변신하는 마지막 장면을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한혜숙은 실제 성격이 직선적이고 도도한 편으로, 드라마에 반영되어 주로 꼿꼿하고 도도하고 고집이 있는 여자주인공 역할을 주로 맡았습니다. 1970년대에 '브라운관의 김지미'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상당한 미모를 자랑했습니다. 올곧은 성격으로 인해 PD들하고 트러블도 있었는데, 그로 인해 하차하거나 방송에 나오지 못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1970 ~ 80년대 인기와 미모 순위하면 항상 순위권에 들었다.


한혜숙의 올곧은 성격, 소박하고 시골 생활을 좋아하는 것이 한혜숙이 은퇴를 빨리 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요?



한혜숙은 김영애, 김자옥 등 여배우들에 비해 영화 출연이 드문 것은 물론 흥행작이 없는 것도 아쉽습니다. 물론 한혜숙이 데뷔했을 당시에는 영화가 사양길에 들고 '호스티스 영화'들이 생기면서 '벗기기 경쟁'이 과열했을 때이니 직선적이고 도도한 성격인 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듯합니다.


한혜숙이 지금까지 활동을 했더라면 주인공의 엄마 역할이나 다양한 역할을 했을텐데라는 아쉬운 생각도 드는 것 같네요. 한혜숙의 근황이 궁금하기도 한데, 전혀 방송 활동을 하지 않으니 알 수가 없을 것 같네요. 한혜숙을 다시 브라운관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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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은 배우로 오랫동안 활동을 했고, 정치의 길로 들어서면서 장관까지 한 인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인촌에 대해서 많은 말들이 있는데요. 그의 배우 생활 그리고 정치 행보를 보면 평범한 사람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유인촌 프로필

유인촌 나이는 1951년 3월 20일생입니다. 유인촌 고향은 전라북도 완주군이며, 유인촌 키는 175cm입니다. 학력은 한성고등학교를 졸업 연세대, 중앙대학교입니다. 유인촌 데뷔는 1973년 MBC 6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를 했습니다.


유인촌 직업은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입니다.


유인촌 어린시절 정치 행보

유인촌은 1951년 3월 20일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태어났습니다. 한성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연극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7년부터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조교수로 강단에 처음 선 후 2000~2004년까지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를 역임한 뒤, 이명박 서울시장의 부름을 받아 서울문화재단 초대 대표이사를 2년 간 역임했습니다. 이 때부터 그의 정치 행보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유인촌은 2007년 17대 대선 때 이명박 후보 문화예술정책위원장 대행을 맡아 이명박의 당선을 도왔고, 2008년 1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회교육문화분과위 상근자문위원,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을 각각 맡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2010년까지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 2011~2013년까지 대통령실 문화특별보좌관을 맡으며 2012년 잠깐 예술의 전당 이사장을 맡았고, 2014년 배우로 복귀했습니다. 자신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발탁했던 이명박 前 대통령과 상당한 친분을 가지고 있어, 이명박이 퇴임한 현재도 최측근들과 더불어 이명박을 자주 만난다고 합니다.


유인촌은 역사스페셜의 진행자로도 친숙하며 여러 드라마와 연극에 출연하였습니다. KBS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이명박을 모델로 한 박형섭, SBS 드라마 삼김시대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역으로도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드라마 중 이명박을 모델로 한 인물의 역할을 두 번 맡은 적이 있지요.



정치인이 된 이후 행보를 보면 꽤나 괴리감이 크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유인촌은 딱히 정치 성향 여부로 평가되는 인물이 아니었고, 오히려 <역사스페셜> 진행자로서 공정한 이미지가 컸었습니다. 하지만 정치 행보 이후 이미지가 많이 바뀐 인물이지요.


유인촌에 대한 평가가 정치적 잣대로 인해 엇갈리게 된 것은 그가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 지지를 본격화하고, 이후 장관으로 입각한 2000년대 후반부터의 일이다. 하지만 사실 이미지 면에서 보면 평가가 엇갈린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떨어져버렸는데, 다른 게 아니라 후술할 '찍지마' 사건 등이 꽤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전까진 대부분 국민들에게 지적이고 예의바른 이미지가 매우 컸는데, 저 사건 이후로 이미지가 부정적으로도 많이 변했습니다.



유인촌은 연극무대에서의 햄릿 역으로 유명합니다. 원래 그가 젊었을 때는 훌륭한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였습니다. 심지어 2016년에는 환갑을 넘은 나이에 또다시 햄릿역을 맡기도 했지요.


유인촌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뮤지컬에도 적극적으로 출연했습니다. 특히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빌라도역은 1980년 초연 이래 무려 십수년간 계속 맡아 오기도. 그 외에도 한강은 흐른다나 지하철 연가 등 창작 뮤지컬의 주연도 자주 맡았습니다.



유인촌은 사실 <전원일기>의 이미지가 박혀서 그렇지 주로 한 역할은 지식인이나 개혁가의 역할 혹은 대부분 그렇게 하다가 말아먹고 망하는 비운의 지식인 연기를 전문으로 합니다. 그리고 2018년 5월 20일까지 OBS의 명불허전도 진행하였습니다.


유인촌은 정치인으로 생활을 하게 되면서 배우로서의 활동은 뜸한 것 같은데요. 배우로서 유인촌의 연기력이 상당히 뛰어났고, 이미지 역시 상당히 좋았기 때문에 배우로서 그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배우 장광은 현재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입니다. 성우 출신의 배우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임펙트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배우로서 자신의 입지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장광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장광 프로필

장광 나이는 1952년 1월 5일생으로 장광 와이프(배우자) 전성애, 아들 장영, 딸 장윤희가 있습니다.



장광 학력은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이며, 현재 소속은 KBS 성우극회 15기(프리랜서)이자 신엔터테인먼트 소속입니다.


장광 성우

장광은 성우 겸 배우인데요. 성우로는 1978년 데뷔 후 현재에 이르러서도 웬만한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많이 나오는 성우 겸 배우입니다. 장광을 배우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사실은 성우로 더 유명했지요.


성우로서도 활동이 왕성하지만, 최근에는 연기자 활동도 상당히 두드러집니다. MBC에 김기현이 있다면 KBS에는 장광이 있습니다. 그만큼 더빙과 정극 연기 모두 독보적인 성우입니다.



장광은 신생팬에게는 연기자로 좀 더 알려져 있는 모양이지만 성우로서도 더빙 연기와 경력이 굉장히 화려하다. 동년배 김환진과 설영범, 이정구와 함께 성우계의 레전드 중 한 명입니다. 참고로 배우 이덕화와 대학 동기에 같은 동년배인데, 그 시절 이덕화와 함께 타학교 무용과 여학생들과 집단 미팅을 주선했다고 합니다.


성우로서 장광은 주로 호탕한 중년 남성이나 할아버지, 아버지, 스승 포지션 캐릭터를 담당하지만 나이에 비해서 청년 목소리도 맡는 노익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악역도 자주 맡는 편인데 특히 악역으로 자주 등장하는 배우인 게리 올드먼의 전담 성우로 유명하다. 영화 레옹에서 마약에 쩔어 사는 형사 노먼 스탠스필드 역을 멋지게 소화해 내어 애니메이션보다는 영화 쪽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장광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성우작은 애니메이션 조커 전담 성우라는 것입니다. 1990년대 SBS에서 방영했던 배트맨 TAS, 카툰 네트워크에서 방영한 더 배트맨과 배트맨 비욘드 극장판 조커의 귀환 등 국내 더빙 방영된 조커란 조커는 모두 맡았습니다.



장광 배우 이력

장광은 원래는 성우직에만 전념했지만, 연기 겸업을 하게 된 계기가 1997년에 터진 IMF 외환위기라고 합니다. 그 당시 방송사의 외화수입중단으로 수입도 감소하고 사업에서 사기를 당해 거액의 빚을 지게 되자 영화배우 겸업뿐만 아니라 탑차(화물차) 운전 자격증까지 따서 쓰리잡을 뛰었다고 합니다. 상당히 열심히 살았다고 할 수 있지요. 현재 빚은 거의 다 갚았다고 합니다.


장광은 주로 정치극 등 드라마에도 자주 출연합니다. 최근에는 매년 3편 이상의 드라마와 영화를 찍는데, 중후한 중년연기를 맡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중년배우로서도 자리를 잡은 듯하지요. 그리고 본인만의 독보적인 캐릭터가 있는데, 주로 악역으로 연기력을 호평 받았습니다.



장광의 대표작은 2011년 영화 《도가니》에서 쌍둥이로 출연했습니다. 배역은 교장과 행정실장 형제로, 둘 다 인간 말종이지요. 한번씩 번갈아가며 연기한 다음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했다고 합니다. 자신도 자기 연기에 섬뜩하고 분노했다고 했을 정도의 열연을 했는데요. 이 배역을 연기한 후유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문도 돌았는데, 감독과 본인이 각각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감독 인터뷰 기사, 장광 인터뷰 기사 디테일하게 둘의 연기가 다르다고. 컬투쇼에 나와서 말하길, 부인께서 영화를 보시고는 3일을 자길 쳐다도 안 봤다고 합니다. 그만큼 연기력이 대단했다고 볼 수 있지요.


장광 본인 입장으로는 억울 할 수 밖에 없는데, 성우였을 때 대부분 인자하거나 자비로운 스승님 역할을 하였는데 막상 배우로 하다보니 외모 때문에 잔인한 악역을 하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요.



장광은 영화 출연 이후 꽤 얼굴이 알려지게 되었는데, 종종 사람들이 현실과 영화를 착각하는 바람에 무척 곤란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에이, 나쁜 놈아!"라고 손가락질하는 상황도 있었고 친구들이 전화를 와서는 "네가 그렇게 나쁜 놈인 줄 몰랐다"고 전화를 뚝 끊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장광은 2012년 11월 개봉한 강풀 원작 26년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26년에서는 그 사람 역을 맡았다. 영화 세 작품이 연달아 비중있는 역, 이 연기까지 성공적이어서 충무로에서는 확실히 자리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박하선 주연의 코미디 영화 음치클리닉에도 출연하는데, 이쪽은 26년과 같은 날에 개봉했다.



이후 장광이 출연한 영화라고 한다면 신세계에서 재범파 출신의 골드문 양이사역을 맡았고, 신과함께, 안시성, 협상, 동네사람들, 강철비2 등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을 하며 배우 경력을 이어가고 있지요.


장광은 성우에서 배우로 완벽하게 변신에 성공했고, 배우로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본인이 무척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비록 악역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만큼 연기력이 뛰어나다고 생각을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장광이 앞으로는 선한 역으로도 많이 출연을 하여 악역으로 나빠진 본인의 이미지도 개선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서미경은 한 때 잘나가는 전직 여배우이자 기업인입니다. 서미경은 미스롯데에 선발되면서 그녀의 인생이 많이 변하게 되지요.


서미경 프로필

서미경 나이는 1959년 7월 4일생입니다. 서미경 정부는 롯데 故신격호 회장으로 신격호 회장은 2020년 사망을 했습니다.



서미경 학력은 안양예술고등학교, 한성대학교 의상과를 중퇴했습니다.


서미경 은퇴 이유

서미경은 한때는 잘 나가는 여배우였지만, 돌연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고 롯데그룹의 창업주인 신격호의 정부로 롯데 가문에 들어가게 되면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서미경 은퇴이유를 롯데 그룹 창업주 신격호 회장의 정부로 들어가면서 부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긴 세월이 흘러 신동빈 한국롯데 회장과 시게미츠 히로유키(신동주) 일본롯데 회장 간의 권력 다툼이 비화되면서 서미경의 거취도 함께 물 위로 떠오르게 됐는데, 이 이슈로 인하여 사실 30대 이하의 사람들은 서미경을 왕년의 스타보다는 롯데 회장 신격호의 정부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서미경은 7세 때 동양방송 어린이합창단으로 활동을 시작해 초등학교 시절 영화 '피도 눈물도 없다'(1969), '푸른 사과'(1969)에 출연하며 아역배우로 활약하였습니다. 이후 '방년 18세'(1973), '여고교사'·'청춘불시착'·'혼혈아 쥬리'(1974), '김두한제3,4편', '속 협객 김두한', '동거인', '강력계', '홍길동', '천의 얼굴', '여수 407호', '춘풍연풍' 등에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서미경은 외모도 출중하고 연기력도 뛰어났기 때문에 무척 기대가 되는 여배우였습니다. 서미경은 금호여자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1972년 제1회 미스롯데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며 롯데제과 CF에 등장해 '껌은 롯데 껌!'을 외치며 유명해졌습니다.



이후 '서승희'라는 예명으로도 활동했으며, 1977년에는 TBC 신인상을 수상했고, 1978년 TBC 드라마 '상노'에서 용녀(龍女) 역을 맡아 인기를 끌었습니다.


서미경은 1981년 KBS 1TV 대하드라마 대명(大命) 출연 후, 돌연 연예계를 은퇴하고 학업을 포기한 채 일본으로 유학을 간다고 발표합니다. 당시 신문 보도에서 강력한 스폰서가 유학을 뒷받침한다는 소문을 기사화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1983년 신격호와이 사이에서 딸 신유미를 출산하고, 처음에는 딸을 여동생으로 호적에 올렸다가, 5년 뒤인 1988년 유전자 검사까지 하고 신 회장의 호적에 입적시키며 딸의 존재를 공식화 했다고 밝혔습니다.



서미경은 두문불출하며, 일부 지인을 제외하고는 외부와의 접촉을 거의 하지 않으며, 은둔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활동 이후의 사진은 거의 드러난 것이 없는데. 갑자기 2006년 롯데시네마에 공급하는 팝콘 등을 제공하는 '유기개발'과 롯데백화점에 입점한 여러 식당들을 관리하는 '유원실업'의 소유주로 재계에 등장해 사람들을 놀래켰지요.



1921년생인 신격호 회장은 무려 38살이나 차이가 나는 서미경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서미경 씨가 운영하는 유원실업은 롯데시네마 중에서 매출이 가장 높은 서울특별시, 경기도 일대 매점 운영권을 독점하고 있어서입니다. 신격호 회장이 2020년 1월 별세하면서 서미경씨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는 것 같네요.

천호진은 현재 <한 번 다녀왔습니다> 드라마를 통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천호진은 주말드라마에 자주 출연을 하면서 다양한 작품을 히트시킨 배우 중의 한 명입니다.


천호진 프로필

천호진 나이는 1960년 10월 28일이며, 천호진 고향은 부산광역시입니다. 천호진 키는 173cm이며,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습니다.



천호진 데뷔는 1983년 MBC 17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를 했으며, 소속사는 제이와이드컴퍼니입니다.


천호진 아버지 천규덕

천호진은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아버지는 천규덕로 한국 프로레슬링계의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천규덕는 2020년 6월 지병으로 사망을 했습니다.



천호진 연기력

천호진은 매우 넓은 장르의 폭을 가졌으며 멜로, 스릴러, 공포, 코미디 등 전 장르를 소화 가능하고, 선함, 비열함, 악랄함, 우유부단함, 비루함, 냉철함, 우울함, 양아치, 싸이코패스 등등 미디어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성격의 캐릭터들을 자연스럽게 연기하여 호평받는 배우로, 현재는 연기만큼은 믿고 보는 배우의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천호진은 심지어는 타고난 싸움꾼인 아버지의 육체를 그대로 물려받아 액션도 탁월합니다. 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은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무술을 해 왔다. 태권도의 경우 지도자 자격이 주어지는 공인 4단이며, 유도 또한 3단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천호진의 연기력은 과거와 지금에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비열한 역할, 악역을 많이 했다면 나이가 들어서는 대한민국 아버지상의 연기를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천호진은 배재고등학교에 재학하던 때 영화 디어 헌터에서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를 보고 배우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어떻게 배우가 되는지 몰라 무작정 탤런트 시험에 응시했는데 발탁되었습니다. 이때 KBS에서는 떨어지고 MBC에서 붙었다고.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대본을 교과서 읽듯이 했는데'도 자신의 가능성을 보고 떨어뜨리지 않았던 사람이 고석만 PD였다고 합니다.



천호진은 데뷔 후 한 동안 단막극에서 단역으로 등장하다가 1986년 MBC 베스트셀러극장 - '청춘의 한낮'에서 가난한 복서 황사빈 역할로, 이규형 감독과의 인연으로 영화 '청 블루 스케치 (1986)'의 대학야구선수 지훈 역으로 영화에서도 주연을 맡았습니다.


천호진은 1990년부터 1998년까지 농촌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에서 싸움 좀 하는 농촌청년 대철을 연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연기로 1992년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신인상을 탔다. 이렇게 순박한 이미지를 연기하는 와중에도 차인표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는 그 이미지를 과감히 벗고 악역을 담당했습니다.



2018년 1월 1일에는 KBS 연기대상에서 연기인생 34년만에 대상을 수상하였고 수상 소감에서 부모님에 대한 효심을 드러냈고, 자신과 함께 한 아내에게 34년만에 약속을 지켰다며 감동적인 수상소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다음 생에도 함께 하고 싶다는 감동적인 소감으로 큰 화제가 되었지요.


천호진은 시청률이 50% 가까이 나오던 내 딸 서영이와 황금빛 내 인생의 영향때문인지 선한 배역만 맡는 것 같은 이미지가 생겼는데, 사실은 과거에도 그렇고 최근에도 악역을 꽤 했습니다. 그가 연기한 악역 중에서는 앞서 언급한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정도일, 꼭지의 조동철, 비열한 거리의 황 회장, 구미호 여우누이뎐의 만신, 각시탈의 기무라 타로, 닥터 이방인의 장석주, 구해줘 2의 최경석이 많이 알려져 있다.



천호진은 주말 드라마를 연이어 히트시키면서 서민형 아버지 배우라는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많이 각인 시키게 됩니다. 원래 악역도 많이 했었지만 뛰어난 연기력을 바탕으로 자신이 맡은 배역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탁월한 연기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네요.


천호진이 앞을로도 지금처럼 좋은 연기를 많이 보여주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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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현숙은 최근 남편 최양락과 함께 예능 프로그램을 통하여 맹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팽현숙은 투자도 잘해서 재산 역시 상당하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팽현숙 최양락부부는 성공한 개그맨 부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팽현숙에 대해서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팽현숙 프로필

팽현숙 나이는 1965년 2월 19일생으로 고향은 경남 창원입니다. 팽현숙 데뷔는 1985년 제3회 KBS 개그콘테스트로 데뷔를 했습니다.


팽현숙은 원조 미녀 개그우먼인데요. 팽씨라는 성씨 때문에 늘 주목을 받았습니다. 팽(彭)씨는 대한민국에 약 3,000여 명밖에 안 되는 희성인데, 팽씨 성인 인물 중에서는 제일 유명하다고 할 수 있지요.



팽현숙은 유머 1번지의 고정코너 ' 남과여 '에 출연할 때는 늘상 최양락한테 갈굼 당하는 얌전하고 어벙한 컨셉이었기 때문에 후일 은퇴 후 180도 다른 이미지의 똑 부러진 사업가로 변신해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습니다. 남과여에서 처음으로 '팽' 성씨가 공개됐는데 하도 희귀한 성이라서 시청자들이 진짜 성으로 믿질 않았습니다.


팽현숙은 같은 코미디언인 최양락과 결혼한 이후에는 한동안 방송에 출연하지 않았다가 2005년 설날특집 폭소클럽에 남편과 함께 한 코너에서만 잠깐 출연하고, 2010년 SBS 《자기야 - 백년손님》에 남편과 함께 고정 출연하기 시작해, 같은 해 MBC 드라마넷의 《부엉이》에도 남편 최양락과 함께 출연해했습니다.



꾸준히 출연한 결과 2011년 SBS 연예대상에서는 최양락과 베스트 커플상, 토크쇼 부문 베스트 엔터테이너상을 수상했습니다. 수상 이후에는 부부간의 이야기를 다루는 예능에도 간간히 출연하고 있는데요. 사실 최양락이 고의적으로 팽현숙이 은퇴했다는 소문을 퍼트려 방송에 출연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2018년엔 KBS 연예대상에서 남편 최양락과 함께 베스트 엔터테이너상을 본인의 34년의 연예 커리어 사상 첫 수상을 받았습니다.


팽현숙 사업

팽현숙은 남양주시 덕소리에서 "팽현숙의 옛날 순대국"이라는 순대국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남편인 최양락도 가게 일을 도우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고 사진을 통하여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여담으로 조리사 자격증을 4개(한국 요리, 서양 요리, 일본 요리, 중화 요리)소지해 요리 분야 국가기술자격증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습니다. 개그우먼으로도 활동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자격증까지 대단한 노력파라고 할 수 있지요.



남편 최양락과의 연애 시기에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한창 최양락과 팽현숙이 연애하던 때에 아는 기자에게 딱 걸려서 연애 기사가 나기 일보 직전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직 결혼 확정도 아니니 "최양락 모 후배와 열애설!!" 요 정도까지만 쓰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 신문에 난 기사 제목이 '최양락, 동료 개그맨 팽 모씨와 열애중!'이라고 나와서 결국 동네방네 열애설이 퍼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 일화를 말하던 최양락은 "대한민국에 팽씨 성을 가진 개그우먼이 팽현숙 밖에 더 있겠냐고!!!"하며 격분 했다고 하지요.



팽현숙은 최근 JTBC의 관찰 예능 1호가 될 순 없어를 통해 남편인 최양락과 실전 부부케미가 무엇인지 보여주며 중장년 층 팬들에게 다시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팽현숙 최양락 부부는 제2의 전성기를 지금 보내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데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다양한 예능을 통하여 좋은 활약을 보여주길 기대해봅니다.

귀순배우로 유명한 김혜영이 TV조선 예능프로그램에 모란봉클럽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김혜영은 결혼과 이혼 등의 시련을 겪으며 한동안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데요. 김혜영이 누구인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김혜영 프로필

김혜영 나이는 1972년 7월 24일생입니다. 김혜영 고향은 함경북도 청진시 출신으로 북한이탈주민입니다. 김혜영 학력은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했으며, 종교는 천주교이지요.


김혜영은 북한에서 무역상인 아버지와 음악교사인 어머니, 여동생 두 명과 함께 살았습니다. 북한에서 비교적 유복하게 살았다고 하는데요. 김혜영 아버지가 무역업을 하면서 유복하게 지낼 수 있었고, 한국으로 귀순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혜영은 평양연극영화대학을 입학 영화배우를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아버지가 대한민국이 잘 살고 있다는 실상을 알고 탈북을 결심하게 되며, 8개월 간의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반대를 했지만, 아버지의 결심을 꺾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북한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트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후 부모는 김혜영과 그 동생들에게는 탈북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으며 먼 친척 결혼식에 가는 거라 속이면서 조금씩 준비하였고, 1998년 겨울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탈북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족들에게 잡힐 뻔하였고,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고 하지요.


무사히 한국으로 잘 돌아온 김혜영은 대한민국에 정착하면서 동국대학교에 입학하였고, 여러 방송에 출연하여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김혜영 결혼과 이혼 이유

김혜영은 2002년에 당시 군의관이었던 성형외과 의사와 결혼하였으나 2005년에 이혼하게 됩니다. 


2009년에 동료배우 김필(김성태)과 재혼하여 슬하에 아들1명을 두었으나, 금전 문제와 성격 차이로 인해 또 이혼하게 됩니다. 경제적인 이유도 상당히 컸다고 하는데요. 아들의 양육은 김혜영이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혜영은 세번째 결혼을 하게 되는데요. 2015년 6월, 프로레슬러 이왕표의 소개로 종합반도체 전문기업 바른전자의 김태섭 대표와 결혼하였으며, 동시에 아이의 양육과 남편의 내조를 위해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번째 결혼 생활도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김혜영 남편 바른전자 김태섭 회장이 지난 2018년 구속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김태섭 회장 등은 중국 투자유치와 관련한 허위정보를 흘리는 등의 수법으로 주가를 끌어올린 혐의를 받고 있는데요. 미실현 이익을 포함하여 200억원대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보고 있다고 언론의 기사를 통하여 알려졌지요. 현재 김혜영과 김태섭 회장과 관계의 근황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김혜영은 최근 다시 TV조선의 모란봉클럽에 복귀를 하며 오랜만에 근황을 공개할 예정인데요. 방송을 통하여 김혜영의 근황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아무튼 오랜만에 복귀를 한 만큼 김혜영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배우 이초희는 주말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를 통하여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최근 뜨고 있는 여배우 중의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초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초희 프로필

이초희 나이는 1989년 10월 4일생입니다. 이초희 고향은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학력은 서울예술대학교이지요. 데뷔는 2011년 영화 파수꾼을 통해서 데뷔를 했습니다.



이초희는 2011년 영화 파수꾼을 계기로 같이 출연했던 다른 배우들과 더불어 업계의 주목을 받았고, 2013년 전국노래자랑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배우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초희의 외모가 배우 정인선과 상당히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그녀의 데뷔작 파수꾼을 보면 너무나도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처음으로 드라마 주연을 맡은 작품은 2014년 방영한 꽃할배 수사대이며 이후 2015년, 2016년 후아유 - 학교 2015, 육룡이 나르샤, 운빨로맨스에서 작중 역할을 통해 화제가 되었고,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았지요.



그리고 2017년 사랑의 온도를 통해 시청자들의 큰 주목과 사랑을 받아 2017년 SBS 연기대상 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정점을 찍고 있는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서 송다희 역으로 복귀를 하고 윤재석 역의 이상이와 함께 흥미진진한 모습을 보여주며 데뷔 이후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지요.


이초희 어린시절

이초희에게 있어 어린 시절은 배우였던 시기만큼이나 삶에 있어 매우 중요했던 시기였습니다. 대구에 살았던 그녀는 부모님의 직업 때문에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서울에 와서도 이사를 많이 다녔고, 초등학교 전학만 네 번을 겪었을 정도로 남들과는 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지속적인 교우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느꼈던만큼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 큰 외로움을 느꼈었고, '자신이 사라질 것 같다'와 같은 생각을 하며, 나이가 어렸음에도 자신의 삶에 대해 매우 불행하다고 느꼈었다고 합니다. 지금 보면 이것에 연기에도 묻어 있었던 것 같네요.



그러던 와중 연기학원 전단지를 보게 되었고, 자신감을 가지고 타인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고자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게 그녀가 10살 때 일이었습니다.


이초희는 중학교에 입학하며 부모님에게 앞으로 연기자가 되겠다고 밝혔는데, 평범한 삶을 원하신 부모님에게 있어 딸의 연기는 어린 시절 다양한 경험중 하나였었지, 그걸 직업으로 삼았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엄청나게 반대했고, 이에 이초희는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었다고 하지요.



특히 아버지와 갈등을 심하게 겪었는데 이초희는 '아빠가 뭔데 나한테 이러는 거냐' 하며 크게 대들었고, 한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며 냉전 시기를 겪기도 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러다 아버지와 '협상'을 하게 되었는데, 서울예대를 지망했던 이초희에게 아버지는 '원하는 대학을 수시로 입학하면 몇년간은 지켜보겠다. 대신 대학교 갈 때까지는 평범한 10대처럼 보내라'는 말에 학창시절은 평범하게 공부만 하고, 연기와 인연을 끊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때도 대학가면 연기하겠다고 밝혔었으나 부모님께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으시다 결국 져주셨다고 합니다. 이후 그녀는 2008년 서울예대 연기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지금의 이초희가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초희가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드라마 속에서 맡고 있는 캐릭터의 이미지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온순하면서도 착하고, 상당히 매력적인 송다희 역을 맡고 있기 때문이지요. 주말 드라마에서 항상 있을법한 막내 딸의 달달한 로맨스도 대중들의 흥미를 자아내고 있지요.


이초희는 주말 드라마를 통하여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미지가 각인되었고, 앞으로 배우 활동에 대한 기대감도 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초희가 앞으로도 대중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정인선은 잘 성장한 여배우입니다. 아역 배우부터 시작해서 최근에는 무척 참한 여성의 이미지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골목식당에서 정인선은 김성주, 백종원과 함께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감초 같은 역할로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정인선 프로필

정인선 나이는 1991년 4월 25일생입니다. 정인선 키는 157cm이며, 학력은 세종대학교입니다. 정인선 데뷔는 1996년 SBS 드라마 <당신>으로 데뷔를 했지요.


정인선 아역 배우 출신

정인선은 아역 출신 배우로 순풍산부인과에서 미달이와 같은 반 친구 세미나 역으로 등장했습니다. 아마 순풍산부인과에 정인선이 출연을 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정인선은 의찬이, 정배 다음으로 비중있는 아역배우였습니다.



그리고 정인선은 어린이 드라마 '매직키드 마수리'에서 한세은 역으로 출연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습니다. 정인선은 영화 '살인의 추억' 에서 수로를 뒤지는 송강호에게 "거기 뭐 있어요?"라고 말을 걸던 여자 초등학생 역을 맡아 단역임에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이처럼 다채로운 작품을 통해 연기력을 입증하며 ‘아역 배우의 좋은 예’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인선은 영화 '한공주'를 통해 주인공의 상황과 대비되는 순수함 그 자체를 상징하는 캐릭터를 연기하여 호평 받았습니다. 특유의 밝은 표정이 인물의 상징성을 잘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요.



정인선 골목식당

이제 정인선의 대표작을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인선은 전임인 조보아보다 빠른 적응력을 보였는데요. 예쁜 외모와 함께 착한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전임자인 조보아가 맛없는 음식을 먹고 찰진 리액션을 보여주는 일명 맛없슐랭을 담당했던 반면, 정인선은 현장에 투입되어 식당업무 전반을 보조하며 참가자들의 멘탈케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때문에 조보아에 비해 매장에서 직접 서빙하고 손님, 사장님들과 소통하는 분량이 많습니다.



정인선은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들을 워낙 좋아하다보니 이런 음식들은 입맛에 맞지 않은 김성주와는 상반되는 입맛을 통한 만담을 나누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백종원은 정인선이 특히 좋아하는 내장류를 먹을 때는 반드시 정인선을 부르고, 신나게 달려가는 그녀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힙니다. 이와 반대로 상황실에 남은 김성주는 내장류를 보고는 질색을 하지요. 외모와 정반대인 식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정인선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정인선은 골목식당을 통하여 대중적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미지가 예능쪽으로만 각인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생각도 드네요. 정인선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좋은 모습 보여주길 기대해봅니다.

김범룡이 트롯전국체전에 박상철이 하차하고 새롭게 합류하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김범룡은 싱어송라이터로 1980년대 가요계 흥행을 불러일으켰던 가수입니다.



김범룡 프로필

김범룡 나이는 1959년 7월 8일 (음력 6월 3일)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김범룡은 원래 미술에 소질이 있었는데요. 원래는 서양화에 관심을 두면서 충북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지만 중퇴했고, 음악의 길로 전향했다.



그러다가 김범룡은 1982년 연포가요제에서 보컬 듀오 "빈 수레"로 활동했고 자작곡 '인연'으로 가요제 우수상을 수상하며 프로 가수가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특히 예술쪽에 관심이 많고 능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범룡은 25세 때인 1985년 1집 '바람 바람 바람'을 통해서 솔로가수로 데뷔, 당대 최고의 인기를 얻으며 인기가수로 급부상하였고, 조용필, 전영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80년대 최고의 가수로 등극하게 됩니다. 



김범룡의 노래는 1980년대 음악계에 반향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KBS 가요톱10에 출연해서 인기가수로 등극했고 1985년 KBS 가요대상 신인가수상, 1986년에 MBC와 KBS에서 10대 가수상을 수상했습니다.



김범룡의 과거에 샤니의 바람바람 빵에 등장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지요. 국진이 빵 등 과거에는 인기 스타를 빵 모델로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김범룡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김범룡은 1985년에는 영화 '졸업여행'에 이미숙과 함께 주연으로 출연했습니다.


김범룡은 제작자로도 활동을 했는데 김범룡이 프로듀스한 그룹이 바로 녹색지대입니다. 녹색지대는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요.



싱어송라이터로 1980년대를 풍미했던 김범룡. 녹색지대가 성공을 하면서 프로듀서로서의 가능성도 엿볼 수 있었는데요. 그 이후 만들어낸 성공한 가수가 없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여전히 활발한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김범룡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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